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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蘭之交, 社乎!, 社乎!
어느 날, 이제 빌려 간 것을 도로 내놓으라는 자연의 부름을 받고 화장실에 정좌하여 공맹의 도리를 되새김질하려던 차에, 문득 눈앞에 낯선 포스터가 걸려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란다움이라는 텍스트 밑으로는 지란지교패밀리의 기업문화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었죠. 공자와 맹자께는 잠시 기다리시라 하고, 우리가 몸담은 곳의 문화에 대해서 탐독을 하였습니다. 비록, 그리 향기롭지만은 않은 곳에서 읽은 글이나, 곰곰이 되짚을수록 방금 머리를 맴돌던 옛 성현의 지혜가 스민 향기로운 글인 듯하였습니다.
종묘와 사직을 찾던 시절은 오래전에 스러졌으나, 조상들이 하늘같이 떠받들던 유교적 삶의 철학,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인생의 가치들은 현대를 걷는 우리들의 발걸음에도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때문에 현대인들도 끊임없이 논어에서 신념을 쌓고, 맹자의 말속에서 깨달음을 구합니다. 평소 입으로는 세속을 읊더라도 마음속에는 성현의 가르침을 담아두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뜻하지 않게 화장실에서 접한 우리 회사의 문화는 잠시 기억 속에 접어둔 가르침들을 되새기게 해주었습니다.
1. 도전은 실험정신 그리고 DO
궁즉변(窮卽變) 궁하면 변화해야 할 것이고,
변즉통(變卽通) 변화하면 통할 것이고,
통즉구(通卽久) 통하면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주역의 계사전에 실린 말입니다. 계사전은 사서삼경의 하나인 역경이고, 계사전은 경(經)을 이해하기 쉽도록 덧붙인 부교재인 전(傳)의 하나입니다. 주역이 ‘수학I’이면 계사전은 ‘기본 수학의 정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구절은 실패와 좌절에 맞서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그래도 실패하면 다시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를 반복하면 마침내 성공하여 안정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구하려는 자세, 기업문화의 첫 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마음입니다.
2. 어른답게 행동하는 자율
궁자후이박책어인이면 즉원원의(躬自厚而薄責於人이면 則遠怨矣)
몸소 자신을 굽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망함을 엄중하게 하고,
남을 책망함에 있어 가볍게 한다면 원망과 탄식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논어 위령공 편에 실린 말입니다. 어떠한 일이든 자신의 책임을 무겁게 여기고, 이에 대해 다른 이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자신을 책망하여 이를 채찍으로 삼고 정진하며,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지 않는 어른의 자세 역시 성현의 가르침에 살아있습니다.
3. 명확한 양방향 소통
군자는 주이불비하고 소인은 비이불주(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군자는 두루두루 소통하되 끼리끼리하지 않고, 소인은 끼리끼리하되 두루두루 소통하지 않는다.
논어 위정편에 실린 구절입니다. 군자와 소인의 소통, 무리지음에 대하여 하신 공자의 말씀이지요. 군자는 무리짓지 않고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위아래 사방으로 두루 소통하며, 소인은 그러지 못하고 소통의 폭을 좁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하의 구분 없는 언로의 개통, 유교의 이상향에서 필수 조건으로 꼽히는 덕목이지요.
4. 본질을 생각하며 빠르게
군자 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군자는 말할 때는 어눌하게 하기를 바라되,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 노력한다.
군자는 생각하고 이를 발설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하되, 그것을 실행할 때는 더없이 민첩하게 추진하여야 한다는 논어 이인편의 가르침입니다. 본질을 잡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이를 실행할 때에는 빠르게 타이밍을 잡으라는 회사의 신조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요.
5. 백발의 엔지니어가 당당한 곳
아대가자(我待賈者)
나는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논어 자한편에 보면, 높은 학식과 재주를 가진 스승이 초야를 전전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제자 자공이 공자와 나누는 대화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 있다면, 궤짝에 숨겨둘 것인지 제 값을 쳐줄 이에게 팔아야 할 지를 묻는 자공에게 공자는 팔아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숨은 뜻, 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는가에 대한 답도 덧붙입니다. 공자는 50의 나이에 고국을 떠나 지금으로 말하면 구직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런 공자의 재주를 높이 사서 등용한 군주가 없었기에 춘추전국의 혼란은 더 길어졌을 수도 있겠지요. 세월을 낚았다는 전설의 도시어부 강상은 나이 70에 입신하여 벼슬길에 나섭니다. 재주와 덕이 있는 강상을 나이에 관계없이 등용하였던 주나라의 문왕은 지금도 명군의 표본으로 꼽히죠. 그 옛날의 사람들도 사람의 능력은 나이와 관계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하물며 현대에서 나이를 탓하는 일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논어에 공자의 등용을 거부하며 본인의 나이를 핑계로 댄 이가 나옵니다. 제나라의 경공은 공자의 등용을 반대하는 신하의 등쌀에 오노의 불능용(吾老矣 不能用)이라며 둘러댑니다. 자신이 늙어 당신을 등용할 수 없소라는 말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엄청나게 소심한 굴욕의 한 마디로 남게 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타인이나 자신의 나이를 탓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6.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어쩌면 이 단락에 있는 내용이 유교, 공자의 가르침과 이 포스터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다리가 되었을 겁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와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이익보다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행동을 우선한다. 유교의 모든 가르침이 총망라된 그레이티스트 히트 앨범같은 단락이지요.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득지, 불처야(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부유함과 고귀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합당한 방식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거기에 연연하여 머물지 않는다.
공자는 얼핏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재와 부귀를 추구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을 얻는 과정에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을 강조하였죠. 논어 이인편에서 공자는 이익을 얻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합당한 방식으로 그것을 얻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이와 더불어 공자의 수많은 가르침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타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것을 이야기합니다. 위에서 잠시 등장한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묻자 공자가 남겼다는 한 마디는 매우 유명합니다.
군군신신부부자자 (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 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 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 다워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 부끄러움이 없이 그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잃지 않을 것을 명확하게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에게, 내가 속한 조직에게 어떤 역할인지 기억하고 이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원딜은 원딜답게, 정글은 정글답게.
7. 착하게 살자
덕불고 필유린(德不孤必有隣)
덕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논어의 이인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논어 중에서도 이인편은 사람의 어짊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죠. 공자는 어진 이가 행하는 덕에는 반드시 함께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니, 외로울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서로에게 내미는 어진 손길, 마음씨, 말에는 다른 어짊을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내 주위의 가족, 친구, 동료에게 어진 사람이 된다면, 그들 역시도 우리에게 어진 이들이 되어줍니다. 이런 선순환이 사회로, 나라로, 세계로 번지는 것이 바로 유교적 이상향이지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부터, 우리 가족부터, 우리 회사부터 실천하는 어진 행동은 인류평화를 가져올 열쇠입니다. 어벤저스 없이도 가능합니다.
화장실에 앉아서 공맹의 도리를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다니, 신선하고도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더불어서, 아 참 좋은 기업문화구나하고 새삼 감탄하는 마음도 들었지요. 공자께서 지란지교의 포스터를 보셨다면, 아마 칭찬하셨을 겁니다. 芝蘭之交, 社乎!, 社乎! (지란지교, 회사다운 회사로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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